치열했던 선거도 끝났다. 선거 결과에 따라 각 정파들은 극명한 승패를 만끽했다. 하지만 선거를 통해 시민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승패가 아니라 희망이다. 과연 새로 뽑힌 선량들이 사욕과 정쟁을 내려놓고 난마처럼 얽힌 국가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얼마나 헌신해 줄까.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누가 뭐래도 저출산이다. 이것이야말로 22대 국회의 최대 현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당선자라면 누구나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정책 지침서가 있다. 바로 정재훈의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2024)이다. 저자는 이대로 가면
어느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지지자의 59%가 “트럼프가 싫어서” 바이든을 지지한다. 트럼프 지지자의 39%가 “바이든이 싫어서” 트럼프를 지지한다. 미국 유권자의 절반이 ‘싫어서’ 투표할 기세다. 같은 조사를 우리나라에서 한다면 그 비율은 아마 더 높을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는 “나를 좋아하게 하는” 정치보다 “상대를 싫어하게 하는” 정치가 더 효과적이다.마침 그러한 퇴행적 정치 현상을 날카롭게 파헤친 문제작이 있다. 바로 김민하의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2022)다. 말 그대로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현상이
“변화에는 반드시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조용한 변화는 검은 백조와 같은 것이다.” 지난 2월 말 민주당 공천 파동이 한창일 때 이재명 대표가 한 말이다. 이 말 중에 유난히 흥미를 끄는 대목이 ‘검은 백조’라는 격조 높은(?) 비유다. 한마디로 검은 백조가 없듯이 조용한 변화도 없다는 뜻이다. 얼핏 들으면 지당한 이야기다. 이 세상에 검은 백조가 어디 있겠는가.그런데 놀랍게도 신대륙 호주에서 검은 백조 한 마리가 발견된 적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경험을 뛰어넘는 매우 희귀한 일이다. 우리는 이처럼 확률적으로 희박한 현상은 무시해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화제다. 제목이 시사하듯이 주인공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그는 우리에게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두고도 “아예 보지도 말라”는 주장까지 난무한다. 물론 “보지 않고는 말하지 말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해방 공간은 국내외 정세가 요동치던 험악한 격랑이었다. 그런 격랑을 헤치고 이 전 대통령이 반도의 반쪽에 어렵사리 세운 나라가 오늘날 번영을 구가하는 대한민국의 시초다. 과연 번영의 과실은 자랑하면서도 그 시초를 부정하는 것이 온당한가. 마찬가지로 그 시초를 만든 사람
얼마전 미국 트럼프 대통령 시절 안보보좌관이었던 존 볼턴이 자신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에 새로운 서문을 썼다는 뉴스가 있었다. 거기서 그는 트럼프가 올 11월 재선될 경우 중국의 대만 봉쇄 또는 흡수를 용인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로 인해 대만이 독립성을 잃는다면 인접국들은 큰 공포 속에서 핀란드화라는 중립국화 정책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그중에 유독 눈길을 끄는 말이 ‘핀란드화’다. 핀란드 역사를 모르면 핀란드화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마침 이런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줄 마땅한 안내서가 있다. 바로 김수권의 ‘
지난 연말 주간조선이 선정한 2023년도 올해의 인물은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이었다. 바야흐로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더 중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특히 올해는 인공지능 원년이라고 할 정도로 그것이 모든 분야로 확산·심화되리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인공지능은 놀라운 혁신을 약속하고 있다. 동시에 다양한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그중에서도 정치적 편향 위험을 파고든 탄탄한 기술철학 담론이 있다. 바로 마크 코켈버그의 ‘인공지능의 정치철학’(The Political Philosophy of AI·2022)이다. 인공지능은 목적
이재명 대표의 피습은 충격적 정치 테러다. 하지만 테러 자체보다 병원 이동이 더 화제다. 이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은 지역 의료 충실화를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럼에도 막상 사건이 터지자 응급 헬기를 타고 ‘(수술을) 더 잘하는’ 서울의 병원을 찾았다. 이것이 지방 의료 홀대·불신으로 비쳤다. 평소 주장이 그저 “(···)인 척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마침 ‘(···)인 척하는 것’의 실상과 사회적 영향을 진지하게 논한 철학적 담론이 있다. 바로 저스틴 토시와 브랜던 웜키의 ‘그랜드스탠딩’(Grandstanding·20
새해가 되어도 기쁜 소식은 별로 없다. 온통 정치 갈등, 기후 이변, 인구 절벽, 전쟁 소식뿐이다. 이런 분위기가 바뀔 기미도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 현생 인류가 차츰 쇠락하여 멸종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과연 인류는 계속해서 살아남아 번영할 수 있을까.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동안 현생 인류가 어떻게 생존하여 찬란한 문명을 가꿔 왔는지를 더듬어 본 진화론적 탐구가 있다. 바로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Survival of the Friendliest·2020)이다. 흔히
대하 역사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화제다. 그동안 우리는 갑갑할 때 주로 병자호란을 곱씹곤 했다. 물론 반면교사가 주는 교훈도 소중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공한 역사에서 배우는 지혜와 기상이다. 과연 우리에게는 성공사례로 당당히 소환할 만한 역사가 없을까.이런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흥미진진한 전쟁 연구서가 있다. 바로 길승수의 ‘고려거란전쟁’(2023)이다. 이 책은 10여년 동안 이 주제에 천착한 재야사학자의 역작이다. 또한 이번 역사 드라마의 원작이기도 하다. 당시 고려는 거란과 거의 30년에 걸쳐 충돌했다. 저자는
노래 부를 자리가 많은 연말이다. 한동안 노래 시장은 아이돌 그룹 천하였다. 그러다가 몇 해 전 TV조선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요즘은 노래 시장도 상당히 다양해졌다. 그 바람에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옛 노래들도 다시 소환되고 있다. 사실 거기에는 다 그럴만한 맥락과 배경이 있다. 그것을 알고 노래를 즐기면 더 맛나지 않을까.마침 우리에게 친숙한 옛 노래들에 얽힌 시대적 맥락을 흥미롭게 풀어낸 문화 비평이 있다. 바로 서영처의 ‘노래의 시대’(2015)다. 부제는 ‘인문학의 프리즘으로 들여다본 대중가요’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법정 정년을 늘려야 한다는 말은 그럴 듯하다. 그러나 현재 정년을 채우는 사람들은 8.5%에 불과하다.(주간조선 제2777호 참조) 달랑 정년만 늘린다면 혜택은 단지 그들 몫이다. 다른 정책의 혜택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들과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는 커다란 성벽이 존재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성벽이 높으면 그림자 또한 짙게 마련이다.이미 100년 전에 극단적 성벽으로 갈라진 사회 속에서 인간이 겪는 좌절과 소외를 실감나게 묘사한 소설이 등장했다. 바로 프란츠 카프카의 ‘성’(Das Schloß·1922년 집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형사범으로 기소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지지층은 더 단단하게 뭉친다. 심지어 그가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당선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명색이 글로벌 리더라는 미국에서 이런 해괴한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다른 지역 다른 나라들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래서 요즘 민주주의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이런 와중에 아예 대놓고 민주주의 이외의 대안을 찾아보자는 도발적 정치 담론이 있다. 바로 제이슨 브레넌의 ‘민주주의에 반대한다’(Against Democracy·2016)이다. 민주주의의
우리는 한·미 동맹이나 미·일 동맹을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 반면 한·일 동맹은 아예 금기해 왔다. 최근에는 한·일 동맹의 우회로로 한·미·일 공조니 동맹이니 하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한·일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압력이 나라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강고한 민족주의로 인해 한·일 관계를 전략적으로 유연하게 설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반일 민족주의는 일본의 뻔뻔함과 부도덕성을 규탄하며 몸집을 불려왔다. “독일은 반성·사과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안 한다.”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이야기다. 그러나 독일이
지난 추석에 대가족이 모여 시끌벅적 명절을 쇠는 TV 프로그램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 딱히 아시안게임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그런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적 선호가 퇴색했다. 실제로 가족 간의 유대는 체감적으로도 점점 약화되고 있다. 더구나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아예 가족 제도 자체를 외면하고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려는 경향이 거세지고 있다.이런 움직임을 앞장서서 수면 위로 끌어올린 자전적 에세이가 있다. 바로 김하나·황선우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2019)이다. 제목 그대로 여성인 저자들은 한 집에 같이 살고 있다. 좋은 점도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저출산, 고령화, 불평등, 복지, 연금, 재정, 서울·지방 격차, 인공지능 등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이다. 하지만 이번 정기 국회도 초반부터 검찰 수사나 역사·이념을 놓고 사생결단을 벌일 기세다. 과연 우리 정치는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이런 진부한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파헤친 참신한 정치 평론이 있다. 바로 조귀동의 ‘이탈리아로 가는 길’(2023)이다. 이탈리아는 분명 선진국이다. 그러나 정치의 표류로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선진국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갈등은 첨예하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는 호날두·네이마르·벤제마 등 유명 축구 선수들을 쓸어담고 있다. 살라도 이적설에 휘말려 있다. 이적이 무산된 메시는 사우디 관광청 홍보역을 맡았다. 이런 흐름은 예사롭지가 않다. 혹시 그 이면에 어떤 강력한 조종자가 있지 않을까.실제로 사우디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해서 ‘미스터 에브리싱’이라고 불리는 핵심적 인물이 있다. 바로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1985년생)다. 그는 부왕의 전폭적 신임 아래 절대권력을 행사한다. 또한 막대한 개인 재산과 국부(國富)를 거머쥐고 있다. 그가 워낙 갑자기
세계잼버리대회가 파행 끝에 어렵사리 막을 내렸다. 이런 긴박한 와중에도 정치권은 어김없이 낯뜨거운 책임 공방을 벌였다. 정쟁은 가뜩이나 어려운 사태 수습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실제로 부실한 대응과 격렬한 정쟁으로 인해 재난 수습 과정 자체가 또 다른 비극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월호 참사가 대표적이다. 이태원 참사도 닮은꼴로 번질 기세다.이런 현실에 비추어 우리가 반드시 음미해 볼 만한 재난 수습 현장 보고서가 있다. 바로 로버트 젠슨의 ‘개인 소지품’(Personal Effects·2021)이다. 여기서 개인 소지품이란,
8·15를 앞두고 바라보는 ‘소녀상’은 여러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그것은 사악한 가해 민족을 규탄하며 선량한 피해 민족을 분기(奮起)시킨다. 이런 이분법적 선악 담론이 배타적 민족주의의 강렬한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나라들이 앞다퉈 “우리가 피해자”라고 외치고 있다.그렇다면 피해 민족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모두 선량할까. 가해 민족은 예외없이 무조건 사악할까. 실제로는 사악한 조선인도 있고, 선량한 일본인도 있다. 홀로코스트를 당한 이스라엘 민족은 오늘날 팔레스타인 민족을 핍박한
드디어 휴가철이다. 요즘은 어디를 갔다가 무엇을 먹는 것이 아니다. 아예 무엇을 먹으러 작정을 하고 어디를 간다. 그만큼 사람들이 온통 먹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바로 이런 세태를 웅변하는 것이 “맛있으면 0칼로리”라는 유쾌한 농담이다. 거기에 잘 드러나 있듯이 우리는 음식에 대한 욕망에 관대하고, 그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자제력을 애써 외면한다.물론 맛있어도 칼로리는 그대로다. 또한 맛이 있어 많이 먹으면 과식이 된다. 실제로 요즘 주변에 과체중이나 비만이 부쩍 늘고 있다. 흔히 정상 체중보다 15㎏ 이상 더 나가면 비만으로
요즘 한·미 동맹의 든든함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가치 동맹’이다. 여기서 가치란 물론 자유민주주의다. 냉전 종식 후 유일 패권국인 미국은 비자유주의적 국가들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요구 또는 강요했다. 즉 가치 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쳤다. 당연히 자유민주주의가 보편적 가치로 수용되고, 세계는 평화로운 공동체가 될 것만 같았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은 걸프전쟁,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등 굵직한 전쟁을 연달아 치렀다. 그 사이에도 세계 곳곳의 여러 분쟁에 개입했다. 클린턴, 부시, 오바마 대통령 집권